한국 SF, 바야흐로 봄날

백승찬 기자

과학에 대한 대중 관심 증대…신인작가·문학상 늘어

“올해 100종 육박할 듯”…공급만큼 수요 따라줄지 관심

한국의 SF(과학소설) 시장이 봄날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창작자들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

아태이론물리센터가 운영하는 웹진 크로스로드는 2005년부터 SF 코너를 마련해 신작을 선보여왔다. 최근 출간된 <드림 플레이어>(케포이북스)는 크로스로드가 펴낸 일곱 번째 SF 선집이다. 1990년대 이후 독보적인 SF 작가로 자리 잡은 듀나, 평론과 창작을 겸하는 고장원을 비롯해 크로스로드로 데뷔한 리락, 하요아 같은 신인까지 8명 작가들의 중·단편을 모았다. 수록작들의 내용은 다양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장쾌한 모험을 펼치는 스페이스 오페라는 물론, 외계인과의 만남, 평행우주, 디스토피아적 통제 사회 등 다양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수록됐다. ‘아직은 너의 시대가 아니다’(이덕래)는 인공지능에 의해 구동되는 ‘스마트 변기’가 가정에 들어온 상황을 그린다. 이 방 저 방 스스로 이동하는 스마트 변기는 불쾌한 소리가 날 즈음이면 헤비메탈 음악을 틀고, 똥의 성분을 분석해 똥눈이의 건강 상태를 살핀다. 하지만 아들의 등쌀에 스마트 변기를 산 김씨는 변기가 왠지 못마땅해 밖에서만 큰 일을 해결한다.

아작은 ‘SF 전문’을 표방하고 2015년 출범한 출판사다. 지금까지 70여종의 SF를 출간했다. 아서 C 클라크, 레이 브래드버리, 할 클레멘트의 SF 고전과 함께 김보영, 곽재식, 정보라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출간했다. 최재천 아작 대표는 “국내 SF의 판매량은 해외 작품보다 떨어질지 모르지만, 작품 수준은 떨어지지 않는다”며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련 문학상도 최근 몇 년 사이 일제히 생겼다. 2014년 국립과천과학관의 SF어워드, 월간 ‘어린이와 문학’의 한낙원과학소설상이 신설됐고, 2016년엔 머니투데이가 한국과학문학상을 제정했다.

신인 작가들도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복거일, 듀나 정도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SF를 쓰는 작가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쯤 김보영, 배명훈, 김창규 등이 등장해 창작 SF의 저변을 넓혔다.

최근 가장 왕성한 창작력을 보이는 소설가인 장강명은 데뷔 이전부터 SF 동호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윤이형, 이종산 등 ‘순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작가들도 SF의 상상력을 작품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 게재된 3000여편의 작품 중 SF로 분류되는 작품은 600여편이다. 브릿G를 운영하는 김준혁 황금가지 주간은 “좀비물에 SF 설정을 섞는 것처럼, SF를 다양한 창작물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장원 평론가는 “2000년대 이전 한국의 SF는 1년에 5~10종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00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며 “꾸준히 SF를 쓰는 작가군이 늘어났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SF의 활성화는 과학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 증대와 관계 있다. 알파고의 등장으로 촉발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 각종 스마트 기기의 발달, 기술 발달을 중점에 둔 4차 산업혁명 등의 키워드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대중의 지식욕을 확장시켰다. 기초 교양을 넘어 좀 더 심도 있는 과학 지식을 제공하는 과학서적이 늘어나거나, 인문사회 전문 출판사에서 과학책을 내는 현상도 이런 흐름과 맞물린다. 과학에 의한 사회 변화상을 ‘사고 실험’으로 제시하는 SF는 이런 분위기에 걸맞다.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한국 SF의 붐과 사회 전반의 과학문화 활성화는 공통의 기반을 가진다”며 “영화 흥행작 중 SF 장르가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을 보면, 국내 SF의 독자 역시 잠재적으로 증가해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장원 평론가는 “환상문학은 구 질서의 회복을 강조하는 반면, SF는 기존 질서를 부순 뒤 새 사고를 만들자고 제안한다”며 “최근 등장한 젊은 작가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SF 관점에서 비판하고 풍자하는 경향이 있다”고 평했다.

공급이 늘어난 데 비해 수요는 그에 못 미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빅 타이틀’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문학 출판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와도 연동된다.

최재천 대표는 “중국의 경우 류츠신, 하오징팡이 2015년, 2016년 두 해 연속 SF계의 권위있는 휴고상을 받으면서 SF 붐이 일었다”며 “한국에서도 작은 계기가 있다면 SF 독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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