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매일신문] 꿈의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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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꿈은 자신 주위의 자연과 세상을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탐구, 이해하는 것이다. 수학의 아름다움, 우주의 기원, 물질의 근본, 생명의 경이, 그리고 뇌의 신비 등 가장 근원적인 주제들을 다룬다. 엣지(edge)를 추구하는 과학자의 정신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 나간다. 그러나 자연의 신비는 한꺼번에 밝혀지는 법이 없다. 과학은 한 개인의 삶과 노력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로마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세네카는 “우주의 진리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밝혀진다”고 했다. 현대 수학학파를 이끈 괴팅엔 수학자들, 양자역학의 산실인 코펜하겐 물리학자들, DNA발견과 생명과학의 혁명을 이룬 캠브리지 과학자들의 연구는 그룹과 세대를 넘어 발전되었다. 이들의 찬란한 전통은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을 열었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첨단과학기술문명의 혁명을 선도하였다.
이들 파이어니어 과학자들은 소수이나, 매우 유연하고 글로벌 이동성이 강한 `노마드` 그룹을 이룬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연구소로 모여들고, 함께 토론과 연구를 수행한다. 한 예로 현재 동계올림픽의 개최지인 캐나다에 2001년 설립된 페리메터 연구소가 있다. 작년 저명학술지 네이처가 `엣지물리학`의 요람으로 소개한 이 연구소의 건물은 워털루 시립 아이스하키장을 허물고 그 위에 지었다. 아이스하키가 국기인 나라에서 “퍽(puck)을 연구소로 패스”한 것은 미래를 내다본 과감한 결정이었다. 페리메터 연구소는 흑녹색의 유리 건물 자체가 현대건축물의 빛나는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학자들을 끄는 매력은 벽을 꽉 채우는 넓은 칠판, 아무 때나 마실 수 있는 커피, 쾌적한 소파가 있는 공간의 여유로움이다. 또한 이 연구소는 젊은 과학자들이 매우 역동적인 분위기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연구를 마음껏 수행할 수 있어, 이들에게는 `꿈의 연구소`로 여겨진다.
이러한 `꿈의 연구소` 설립 경쟁은 20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1930년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1964년 이태리 트리에스테의 국제이론물리연구소, 1979년 미국 산타바바라의 키블리이론물리연구소, 1982년 미국 버클리의 수리과학연구소, 1992년 영국 캠브리지의 뉴턴 연구소, 1994년 독일 드레스덴의 막스플랑크복잡계연구소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96년 서울 고등과학원 (KIAS)와 포항 포스텍 캠퍼스에 유치된 아태이론물리센터 (APCTP)가 세계적 기초연구소들을 벤치마킹하여 설립되었다. 또한 현재 국가적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계획의 일환으로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이 추진 중이다. 포스텍도 대학의 우수한 인력을 기반으로 이 대열에 동참하여 젊은 인재의 육성, 기초연구의 강화, 그리고 대학의 국제인지도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꿈의 연구소`가 구현되려면, 우선 참여과학자의 수월성과 이들의 스피릿(spirit)이 중요하다. 엣지 과학을 추구하는 도전적 정신과 학문적 수월성이 연구소의 기본 성장동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 선도 연구소의 공통적 핵심 요건은 안정적인 연구몰입 환경의 조성이며, 이를 위해 `민간과 공공의 협력`을 통한 과감한 초기 투자와 중장기 지원이 꼭 필요하다. 한 예로 페리메터연구소의 경우 `블랙베리`를 만든 지역기업인인 마이크 라자리디스의 과감한 기부와 지자체 및 국가의 적극적인 공조가 그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페리메터연구소를 통해 인구 10여만의 캐나다 소도시인 워털루는 세계 속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다른 세계적 연구소들도 그 지역을 세계 지도에 각인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포항에서도 `꿈의 연구소`들이 지역과 함께 세계 속에 그 명성을 떨쳐갈 수 있도록 지역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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