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년 뒤 이들도 과학해서 행복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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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여성=행복? 불행?’ 예비 여성과학자 5명 해답찾아
21개월 12만km 날아 7명 인터뷰 “아름다운 만남 보약보다 좋았다”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
안여림·윤지영·윤미진·안은실·손혜주 인터뷰·정리. 사이언스 북스 펴냄. 1만5000원
책을 받아든 순간, 요즘 자주 들리는 ‘인문학 위기설’에 앞서, 한동안 사회적 국가적 화두로 떠돌았던 ‘이공계 기피현상’이란 말이 먼저 떠올랐다. 제목에서 이미, ‘과학’과 ‘행복’은 그리 사이좋은 결합이 아니라는 전제가 읽혀진 탓이다. 부제를 보니, 그 확신이 더욱 굳어진다. ‘여성+과학=행복?’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니까.
하지만 책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묶어낸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TP)의 과학커뮤니케이션팀(팀장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은 과학자집단답게 ‘과연 모두 다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2005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예비 여성과학자 5명을 선발해 전세계 각 분야에게 성공한 선배 여성과학자들을 인터뷰해 ‘진실을 확인해보라’는 임무를 부여해 파견했다. 그들은 모두 과학을 전공했거나 공부중이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었고, 외국어와 글쓰기 그리고 열정이라는 여러겹의 관문을 통과한 나름의 정예요원들이다.
서울 대전 포항 영국 등에서 모인 5명의 요원들은 애초 상아탑 안의 연구자 뿐만 아니라 CEO급의 경영인, 예술분야의 개척자, 과학 저술가 등등을 대상으로 15명의 후보를 골랐고, 그 가운데 서로 일정이 맞는 7명의 ‘멘토’를 만나는 데 성공했다. 21개월에 걸쳐 서울에서 천안, 도쿄, 뉴욕, 워싱턴, 시카고까지 12만㎞를 누비며 이들이 확인한 진실은,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보약 한첩 지어먹는 것보다 더 좋다”는 말에서 미뤄 짐작이 간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멘토는 도쿄대 교수(응용화학과)이자 리켄 표면화학연구실의 주임연구원인 가와이 마키. 나노과학의 권위자로 남편 가와이 도모지 오사카대 교수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과학자 부부로 유명하단다. 하지만 부부가 결혼생활 30년 동안 한 집에서 생활한 것은 신혼초 딱 2년뿐이라는 얘기에서 짐작하듯, 그는 비정규직으로 출발해 지금까지 일곱 군데가 넘는 직장을 전전한 입지전적 ‘과학투사’였다. 그래서인지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세상을 믿어라”는 그의 조언이 헛투로 들리지 않는다.
서울대와 숙명여대 교수(화학과)에서 환경부 장관을 거쳐 국회 국방위원으로 활약중인 김명자 의원은 연구자·교수·저술가·행정가·정치가 등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멀티플레이어답게, “과학은 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의 속살을 보고 싶었다”는 예비 과학자는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마음을 보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 ‘세계의 여성 과학자들 만나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5명의 예비 과학자들이 각자 자신들이 인터뷰한 여성 과학자 선배 7명의 얼굴사진을 들고 서 있다. 〈사이언스북스〉제공
과학잡지 <사이언스>에서 시작해 <뉴욕 타임스> 과학기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지나 콜라타는 미생물학·수학·분자생물학을 전공했지만 “책읽기와 글쓰기를 무척 좋아하고 가르치는 건 싫어서” 기자로 나서 30년 가까이 1000여편의 기사와 <복제양 돌리>, <독감>, <헬스의 거짓말> 같은 베스트셀러 논픽션을 써내며 세계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에게서 찾아낸 성공 비결은 ‘도전정신’. 무작정 글을 보내 <사이언스> 지면을 따낸 그는 <뉴욕 타임스>에도 편지를 보내 면접한 지 3년 만에 채용된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자기 꿈을 따르라”고, “최고의 인터뷰였다”고 자신감을 팍팍 불어넣어준다.
워싱턴에서 만난 서은숙 박사는 우주에서 날아오는(비행기가 아닌) 입자인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을 탐구하는 천체 물리학 분야의 최첨단연구 ‘크림 프로젝트’ 총책임자로서, 1998년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원을 받아, 미국·이탈리아·프랑스·멕시코·한국 등 5개국 100여명의 연구원을 지휘하고 있다. “허드렛일만 맡기는 남성 교수들, 취직이나 유학 관련 중요 정보를 자기들끼리만 나눠갖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견디기 위한 성격 개조법”을 궁금해하는 후배에게 그는 “자신의 목표는 가슴이 안다”며 자기 확신을 처방해준다.
시카고대 교수(물리학)인 김영기 박사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인 고 이휘소 박사의 제자로 그가 이론 부소장으로 있었던 페르미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인연 덕분에 ‘스승의 한을 풀고 있다’는 특별한 사명이 더 눈길을 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소립자 세계의 비밀을 탐구하는 ‘양성자·반양성자 충돌 실험’ 프로젝트의 사령탑으로, 16개국 62개 연구소에서 온 물리학자 850명 지휘하는 까닭에 ‘물리학계 충돌의 여왕’이라 불리는 그는 “조금만 둔감해져라. 다른 사람의 반응에 너무 민감하면 손해다”는 심리요법을 전수해준다.
노정혜 서울대 교수(분자생물학)는 ‘황우석 박사팀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조사를 성공적으로 지휘해낸 덕분에 새삼 설명이 필요없는 인물. 1986년 29살로 최연소 여성 교수가 됐고, 2004년 서울대 사상 첫 연구처장을 맡는 등 가장 순탄하고 이상적인 과학도의 길을 걸어온 그는 “모든 생물은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만큼 자연스럽게 살라”는 인생관을 제시한다.
‘배터리와 결혼한 여자’라는 특이한 별명을 지닌 김유미 박사는 휴대폰 등에 쓰이는 ‘리튬-이온 전지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삼성SDI 첫 여성 임원(상무보)이 됐다. 바쁜 일정 탓에 고속철도(KTX) 천안역사 식당에서 이뤄진 만남에서 그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 위해 결혼도, 화장도 한 적 없다”고 말해, “과학자로 성공하려면 여성성을 버려야 하는가?”라는 고전적인 의구심을 새삼 자극한다. 과연 그렇까?
프로젝트 책임자인 정재승 교수와 5명이 나눈 후일방담을 담은 마지막 장, 마지막 대화에 답이 있다. “20년쯤 뒤에 대학생들을 다시 모아 여러분을 인터뷰하게 했을 때 “나도 과학해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는 남학생들을 보내주세요. 꽃미남으로.” 그 약속이 지켜지길 기대해본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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