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亞-太이론물리센터 소장 러플린 “과학은 모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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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무척 내성적이고 외톨이로 지냈던 탓에 부모의 애를 태웠던 소년이 세계 최고의 과학자로 당당하게 성장했다. 26일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TP) 신임 소장으로 취임한 199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로버트 러플린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54). 기자는 이날 오후 포항공대 내 APCTP 소장실에서 러플린 교수를 단독으로 만났다. 이 센터는 서울대 국제백신연구센터와 함께 국내에 본부를 둔 국제연구기관. 러플린 교수는 “뛰어난 과학적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감성이 뒷받침돼야한다”고 강조했다. 포항공대 물리학과 김승환(金昇煥·45)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노벨상 수상자가 한국에서 월급을 받는 직책을 맡게 된 것은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기분이 어떤가.
“노벨상을 받고 난 이후 세계 각국을 둘러볼 기회가 많아졌다. 특히 아시아는 전자산업이 발달해 꽤 관심을 갖고 있다. 중국 한국 일본을 비교해보면 한국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내가 어렸을 때 한국은 가장 비민주적인 나라였는데 지금은 정반대다. 3국 가운데 가장 민주적이다. 중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비민주적이고 일본은 정부가 학계의 연구에 대해 이런저런 통제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한국은 유교적 전통 속에 학자들의 위상이 비교적 높은 점도 마음에 든다.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한국도 과학분야의 노벨상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노벨상을 받을 만큼의 훌륭한 과학적 연구성과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나.
“복제에 관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은 과학적 탐구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모험을 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훌륭한 과학자 역시 훌륭한 기업인과 마찬가지로 갖춰야할 덕목이 있다. 무엇보다도 연구에서 철저하게 ‘독립적인(independent)’ 태도를 갖는 것이다. 진정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치고 의존적인 태도를 갖는 경우가 있는가. 기존의 연구를 완전히 뛰어넘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교실에서 배울 것은 단편적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용감하게 자꾸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시골에서 태어난 러플린 박사는 성적이 나빠 몇몇 대학에 낙방한 뒤 매사추세츠공대(MIT)에 ‘겨우’ 입학했다. 79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벨연구소에 들어갔으나 연구실적을 내지 못해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때부터 그는 노벨상을 받게 된 분야(분수양자홀 효과 규명)를 파고들었다.
그는 자신이 소년시절 매우 내성적이었지만 부모의 신뢰로 이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적극적이지 못했던 성격 탓에 오히려 어떤 문제든지 스스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생겼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아들도 무척 내성적이지만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박사께서는 작곡 피아노연주 그림 등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미 수준인가 아니면 과학적 탐구를 위한 것인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연말에 APCTP 사무실을 포항공대 내 다른 건물로 옮긴다. 나는 새 사무실에 꼭 피아노를 놓자고 건의했다. 자연을 탐구하는 센터에도 피아노 연주소리가 울려 퍼져야 좋다. 과학과 예술은 비슷하다. 과학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고 예술은 사람의 본성에 들어가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연구원이 아닌 학부 학생들도 아무 부담 없이 센터를 드나들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부대끼도록 꾸밀 것이다. 자유스러움도 과학적 진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다.”
덤덤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대답하던 박사는 ‘과학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묻자 “너무 중요한 이야기”라며 아이처럼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예술적 감성이 과학적 탐구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나는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찬 자연’을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과학적 기술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자연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기술적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능력과는 구별해야 한다. 나 자신이 오늘날까지 과학적 탐구를 할 수 있도록 떠받쳐 온 원동력은 바로 예술적 감정이다. 시끄러운 일상 속에서 가만히 자연의 미묘한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는 예술적 마음이 없다면 자연과 직접 마주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할까. 내가 세상에 새로운 발견을 내놓았다면 바로 이런 태도 덕분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기초과학과 이공계 대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공계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그래도 한국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인위적으로 조정하려고 해도 효과를 못 보니 그냥 두자는 것이다. 과학자에 비해 가령 의사 변호사 사업가가 돈을 더 많이 번다는 것을 한국 젊은이들도 잘 안다. 이런 상황에 비춰볼 때 10년 뒤 한국의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다. 동시에 과학자 수는 줄더라도 과학에 대한 투자는 늘어날 것이다.”
러플린 박사는 한국에서 언제쯤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겠는가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모른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황 교수의 경우처럼’ 연구자의 독립성이 강하게 나타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상도 과학자들이 진정으로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boriam@donga.com
▼로버트 러플린 교수 약력▼
1950 미국 캘리포니아주 비살리나 출생
1968∼1972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수학 전공)
1972∼1974 미 육군 포병 복무(당시 서독 주둔)
1974∼1979 MIT대(물리학 박사)
1985 로렌스 물리학상 수상
1985∼현재 스탠퍼드대 응용물리학 교수
1992∼현재 스탠퍼드대 로버트 & 앤 배스 물리학 석좌교수
1997 프랭클린 물리메달 수상
1998 노벨 물리학상 수상
2004. 4∼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
포항공대 석학교수
▼亞-太 이론물리센터는▼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TP)본부.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TP)는 미주와 유럽의 물리학계가 블록화하는 데 대응해 만들어졌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호주 대만 태국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10개국이 참가해 아·태지역에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이론물리센터를 설립하기로 하고 1994년 한국을 유치국으로 결정했다.
아태물리센터는 본부를 서울에 두고 1996년 4월 출범했으며 당시 노벨상 수상자인 양전닝 뉴욕주립대 교수가 이사장 겸 소장, 정복근 경희대 교수(현재)가 사무총장을 맡았다. 이후 2001년 8월 본부를 포항공대 안으로 이전했다.
아태물리센터는 이달 초 이사회를 열어 신임 이사장에 아리마 아키토(有馬朗人·74·일본 참의원·도쿄대 명예교수), 소장에 로버트 러플린 스탠퍼드대 교수를 각각 선임했다.
이사진은 회원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 17명으로 이뤄졌다. 국내 회원은 황정남 연세대 교수(한국물리학회회장)와 권오갑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또 평의원회(17명)와 과학위원회(7명)에는 86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리위안저(李遠哲·68) 대만학술원장 등 노벨상 수상자 5명을 비롯해 중국 칭화(淸華)대 총장, 크리스토퍼 뷰버터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과 교수 등 물리학계 석학들이 포진하고 있다.
아태물리센터는 출범 후 지난해까지 국제 학술회의를 91회, 세미나 및 강연회를 946회 개최했다. 연구원들이 발표한 논문은 300여편이다.
아태물리센터는 현재 포항공대 제4공학관에 있는 본부 사무실을 12월 이 대학 내 무은재기념관으로 옮기고 국제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한편 국내 과학대중화 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포항=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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