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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TP 2022 올해의 과학도서
고급 과학콘텐츠 창출 및 보급, 과학문화 확산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올바른 과학적 세계관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에서는 과학자 및 과학도, 과학에 관심 있는 대중 모두가 과학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데 도움을 주고자 '2022 올해의 과학도서'를 선정했습니다.
□ 선정위원 명단
고재현(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교수, 선정위원장), 김항배(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원병묵(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 최진영(과학과사람들 대표), 최윤(고려대학교 교양교육원 초빙교수), 손승우(한양대학교 응용물리학과 교수, APCTP 과학문화활동부 위원장), 이은희(과학커뮤니케이터, APCTP 과학문화활동부 위원), 이정원(Pebblous, APCTP 과학문화활동부 위원)
<총 평>
“APCTP 올해의 과학도서”는 작년부터 배경이 다양한 선정위원들이 사전에 미리 추천한 후보 도서들을 취합한 후 이에 대해 치열하고 심도 깊은 토론을 진행함으로써 선정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선정에서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국내 저자들이 집필한 도서의 열풍이 강했다. 선정된 10권의 도서 중 6 권이 국내 현역 과학자 및 공학자들이 직접 집필한 책이었다. 현장에서 연구에 잔뼈가 굵은 이들의 경험과 노력이 반영된 책들이라, 선정 도서의 전문성과 높은 수준에 대해서는 선정위원 모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게다가 기후학, 양자역학, 입자물리학, 생물학, 화학, 과학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내 현역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다가가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구체적이고 명쾌하게 소개하는 역량과 노련함이 무척 돋보이는 도서들이었다. “APCTP 2022 올해의 과학도서” 선정 작업은 수준 높은 대중과학도서를 집필할 수 있는 국내 저자의 층이 더욱 두터워지고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나머지 4권의 도서들은 해외 저자들의 번역서로서, 뇌과학과 진화론을 다룬 두 권의 책에 더해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의 선구자인 여성 과학자 제니퍼 다우드나의 전기 [코드 브레이커], 마지막으로 과학사와 소설의 경계에 서 있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가 선정되었다. 선정위원들은 과학의 다양한 분야별 안배, 기후 위기나 젠더 이슈, 올해 과학 분야 노벨상과의 연관성을 포함한 도서의 화제성 등 다양한 측면도 고려하면서 도서를 선정했지만, 최종 결정된 도서들의 면면을 보면 도서 자체의 높은 수준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현대 정보통신 문명의 급격한 변화는 인류의 미래에 불확실성을 증가하는 측면도 있는 듯싶다. 올바른 현실 인식에는 발전하는 현대 과학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당연히 도움이 된다. 올해 선정된 10권의 도서가 독자들을 과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대 과학의 진면목으로 이끄는 밝은 등대가 되리라 확신한다.
고재현(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교수, 선정위원장)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저⏐ 노승영 역 ⏐ 문학동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를 멈출 때>는 20세기 과학이 가장 위험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운명 비극을 다루는 고딕 소설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근본적인 비밀을 탐구하는 인간들은 그 댓가로 무엇을 치뤄야 하는가.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는 이 책에서 과학적 사실과 허구는 마치 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사람이 느끼는 블랙홀의 경계처럼 불분명하다. 이 책이 과감하게 묘사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환상과 공포, 다섯편의 단편들이 서로 엮이며 그려내는 불쾌하도록 구체적인 감정들로 인해 우리는 20세기 과학이 배태한 악몽의 그림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못하는 우리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올해의 과학책으로는 다소 의외의 선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위원회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지금 과학과 문명이 겪고 있는 어떤 문제들은 문학이라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서는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무력감의 반영이 아닐까 한다. 파괴되는 지구를 바라보는 21세기의 독자에게 감각과 광속의 한계(!)로 고통받는 20세기 과학자들의 실존을 이토록 구체적이고 불쾌하면서도 매혹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왜 문학의 도움을 거절하겠는가.
최진영(과학과사람들 대표)
○ 사라진 중성미자를 찾아서
박인규 저⏐계단
대중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성미자는 노벨물리학상을 네 번이나 받은 주제임에도 아직도 밝히지 못한 성질이 많아서 계속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입자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 가운데 가장 약하고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먼 힘이 약력인데, 중성미자는 약력만 작용하므로 책 제목이 암시하듯이 우리에겐 유령 같은 입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과학자들이 유령 같은 입자의 존재를 예견하고, 결국에는 존재를 확인하고, 그리고 우주라는 뜻밖의 곳에서 마주치는 과정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그 이야기들을 대중적인 수준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저자의 말발은 숱하게 경험한 바가 있는데 글발도 그에 못지않음을 알려준 책이다. 책을 잡자 한달음에 읽을 수 있었다.
김항배(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판타 레이
민태기 저⏐ 사이언스북스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라는 부제와 터보 엔진 전문가라는 저자의 이력을 보고 자칫 이 책이 유체역학의 역사만 다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두껍고 긴 유체역학 책이라니,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몰입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모든 것은 흐른다.” 는 뜻의 ‘판타 레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이 다루는 과학은 계속 흐르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과학과 과학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예술, 당대의 사회사가 함께 휩쓸려 도도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 혁명가와 예술가를 엮어내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도 감탄스럽다. 그렇지만 보텍스라는 열쇠말을 중심으로 자신의 관점을 고수해 이 흐름을 만들어 낸 뚝심에 더 큰 찬사를 보낸다.
최윤(고려대학교 교양교육원 초빙교수)
○ 퀀텀의 세계
이순칠 저⏐ 해나무
“세상을 뒤바꿀 기술, 양자컴퓨터의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의 내용은 양자컴퓨터에 국한되지 않는다. 양자컴퓨터의 개척자로 알려진 저자는 전공자다운 깊은 학식과 논리적이고 깔끔한 설명을 통해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 및 양자기술이 태동하게 된 얽힘 현상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구체적이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양자정보기술의 대표적 분야인 양자컴퓨터, 양자원격이동, 양자암호 등에 대해 다룬 후 양자정보기술이 갖고 있는 현재의 한계와 과제, 앞으로의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상술하고 있다. 그간 양자기술, 양자정보에 관련된 국내외 도서들을 여러 권 독파했지만 이 책은 그중 가장 돋보이는 책이다.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의 기괴함, 양자컴퓨터의 원리 및 현주소를 알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양자기술의 최전선이 여기에 담겨 있다.
고재현(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교수, 선정위원장)
○ 생명을 묻다
정우현 저⏐ 이른비
생명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누가 여기에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현대 과학도 아직 답을 모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올바른 질문을 다시 정리해 보자.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이렇게 탄생했다. 생명의 본질에 관한 15가지 질문들! 올바른 질문이 있어야 옳은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친절하면서도 예리하다. 진리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 갈증 때문에 과학이 생명력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과감하게 우리의 무지를 깨운다. 이 책은 그래서 대단한 역작이다.
원병묵(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
○ 기후의 힘
박정재 저⏐ 바다출판사
화석연료 덕분에 누렸던 20세기 문명의 혜택은 21세기에 인류에게 기후 위기라는 숙제가 되어 돌아왔다. 인류가 과학기술의 힘과 협력을 통해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후가 인간 사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기에 기후와 인류 역사의 상관관계는 역사학에서도 중요한 주제이다. 저자는 빙하기와 지질 활동 등에 의한 기후 변동이 인류의 진화와 이동, 농경과 문명의 등장 등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과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을 자료에 근거해서 두루 살피고 있다. 이 책의 더 큰 가치는 기후 변동과 함께 한반도에 진입한 인류의 유전적 기원, 한반도에서 언어와 농경의 기원 등 우리의 터전인 한반도에 대한 빅 히스토리적 접근을 처음으로 시도한 점이다.
김항배(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저⏐ 김명주 역⏐ 부키
우리는 종종 과학이 내리는 답이 논리적이고 깔끔한 것이라 생각한다. 진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류에서 양서류로, 파충류에서 조류로 화살표로 이어진 명쾌한 진화 계통도를 기대한다. 고생물학자인 닐 슈빈은 먼지 덮인 화석 연구에 발생학, 분자 생물학을 결합해 수십억 년의 생명의 역사를 드러낸다. 이 책에서 그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자연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유전자를 중복복사하고 표절하고 도용하여 새로운 유전자가 생겨나고, 또 다른 돌연변이를 퍼트리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닐 슈빈은 이 다양한 우연과 필연의 과정을 그의 연구 여정과 동료 연구자의 이야기를 통해 찬찬히 풀어낸다. 덕분에 독자들은 이 흥미로운 과정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이 책의 또다른 훌륭한 점이다.
최윤(고려대학교 교양교육원 초빙교수)
○ 천 개의 뇌
제프 호킨스 저⏐ 이충호 역⏐ 이데아
뇌와 지능을 연구하는 저자는 '천 개의 뇌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새로운 이론은 뇌에서 어떤 특정 지식이 수천 개의 피질 기둥에 분산되어 저장된다는 이론이다. 기존의 이론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론이 얼마나 강력하고 아름다운지 설명한다. 더불어 모든 사람이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고 배우기를 바란다. 천 개의 뇌 이론에 대한 발견은 기계 지능과 인간 지능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안내한다. 천 개의 뇌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오늘날의 인공 지능은 아직 올바른 지능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인간의 뇌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론의 렌즈를 통해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뇌와 지능에 관해 이보다 획기적이며 흥미로울 수 없다.
원병묵(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
○ 코드 브레이커
월터 아이작슨 저⏐ 조은영 역⏐ 웅진지식하우스
만약 월터 아이작슨이 여러분의 전기를 썼다면, 여러분은 본인이 인류 역사에 감출 수 없는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통해 비트와 IT 의 세계를, 아인슈타인을 통해 빛과 원자의 세계를 탐구했던 아이작슨은 다우드나의 전기를 통해 생명과 유전자의 비밀을 탐구하는 것으로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섭렵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어마어마한 이권과 얽히고, 피말리는 경쟁으로 불타는 현대 생명 공학계를 그려낸 촘촘한 정밀화이다. 성실한 저널리스트이자 전기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은 크리스퍼 기술을 통해 21세기의 과학계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여는 사람들이 부딪히게 되는 윤리 문제의 촘촘한 배경 속에 뛰어난 여성 과학자인 제니퍼 다우드나의 초상을 그려넣는다. 이건 우리가 기대하는 전기와는 꽤 다르지만, 성실한 저널리스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현대 생명 과학의 가장 풍부한 초상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최진영(과학과사람들 대표)
○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
박은정 저⏐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물리나 화학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어려운 학문으로 다가가는 게 현실이다. 우주나 물질의 보다 근본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물리학은 입자물리나 천체물리 관련 대중 도서들이 많이 읽히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화학 분야의 대중과학 도서는 적은 편이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세수하고 화장을 하는 등 우리가 매일 보내는 일상 생활과 보다 밀접히 관련 있는 분야는 화학일 것이다. “생활 속 화학물질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법”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나노독성학의 세계적 전문가인 저자가 일상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화학물질들의 독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일부는 생리대, 라돈, 석면, 미세플라스틱, 살균소독제 등이다. 화학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풍요의 뒷면에 버티고 있는 어두운 측면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각 가정과 학교의 필독서로 추천할 만하다.
고재현(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교수, 선정위원장)